어제는 오늘을 만난다

서문《취향(取向) — 이어 변주하다》서근섭시안미술관2026.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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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전, 돼지고기를 삶는 레시피가 중국에 있었다. 요리의 이름은 동파육. 레시피의 제목은 「저육송(豬肉頌)」, 돼지고기를 기린다는 뜻이지만 그 내용은 조리법이었다. 솥을 깨끗이 씻고 물은 조금만 붓고 장작은 연기만 오르되 불꽃은 일지 않게 한다. 고기는 스스로 익기를 기다릴 뿐 재촉하지 말라는 것이 핵심이다. 불의 기운이 넉넉해지면 알아서 맛있어진다고 했다. '동파거사(東坡居士)', '소동파(蘇東坡)'로 불리는 소식(蘇軾, 1037~1101)이 황주로 쫓겨나 있던 시절에 쓴 글이다. 사실 소식은 요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로 이름난 문인이었다. 벼슬길에서는 새로 만드는 법이 내세우는 명분과 달리 백성에게는 그렇게 닿지 않는다고 말하다 여러 번 유배를 당했고, 그렇게 쫓겨난 곳마다 글을 남겼다. 동파육의 레시피는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했다. 고기의 값이 흙처럼 싸서 귀한 이는 먹으려 들지 않았고 가난한 이는 삶을 줄도 몰랐던 고기를 두고, 그것의 쓸모와 활용 방법을 말한 것이다. 다시 말해 소식은 그 값이라는 잣대를 걷어내고 고기가 지니는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유배를 당하게 했던 그 법을 두고 한 이야기와 고기를 두고 한 이야기가 다르지 않다. 법이 무엇을 내세우는가가 아니라 그 법이 백성에게 실제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보았고, 고기의 가격과 그에 따른 가치가 아니라 무엇이 그 고기를 맛있게 하는가, 어떻게 그 고기를 섭취할 수 있게 하는가를 보았다. 이는 이름이나 가격처럼 바깥에서 붙은 것을 걷어내고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것을 짚는 안목이라 할 수 있겠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유배를 여러 번 다닌 것도 그 안목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 그림에도 오래 매겨둔 잣대가 하나 있었다. 실물과 얼마나 닮았는가와 같은 기준이다. 누군가의 그림 한 폭을 두고 쓴 시에서 소식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그림이 대상을 닮았느냐로 논하는 자는 그 식견이 아이와 다를 바 없다고. 그렇다면 그림을 그림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무엇인가. 소식은 답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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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게 그리지 말라는 것은 이미 그릴 줄 아는 사람에게나 쓸모가 있다. 처음 붓을 잡는 사람은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배우려는 이에게는 결국 따라야 할 무언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원나라 때부터 그림 그리는 법을 정리한 교본, 곧 화보(畫譜)가 백과사전처럼 편찬되기 시작했다. 이간의 『죽보상록』이 1320년경, 오태소의 『송재매보』가 1350년경에 정리되었다. 청나라에 이르러서는 『개자원화전』이 나와 사군자 화법이 한 묶음으로 널리 퍼져 그림을 배우려는 이들의 입문서 노릇을 하게 되었다. 마디는 이렇게 끊고 잎은 저렇게 친다. 획을 어느 방향으로 몇 번 긋는지까지 그림으로 보여주니, 배우는 사람은 명쾌했고, 그것을 보고 따라 그리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곧 이것이 문인화를 배우는 표준이 되었다.

소식이 닮음을 밀어낸 것이 11세기, 교본이 자리 잡은 것이 14세기, 사군자 화법이 널리 보급된 것이 17세기에서 18세기인데, 700여 년에 걸쳐 닮을 대상이 사라진 자리를 그렇게 그리도록 하는 교본이 채운 셈이다. 닮지 말라는 말이 아무렇게나 그려라는 말은 아니었을 테니, 그 교본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교본에 실린 획은 수백 년에 걸쳐 논의되고 다듬어졌으며, 검증된 것이었다. 문제는 약간 비켜난 곳에 있었다. 대상을 닮지 말라고 했더니, 대상 대신 그리는 방식, 즉 교본을 닮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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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닮아야 하는 것이 야정 서근섭의 화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줄기는 전서(篆書)처럼, 마디는 예서(隸書)처럼, 가지는 초서(草書)처럼, 잎은 해서(楷書)처럼 그리라던 규칙은 붓의 자유로운 움직임 뒤켠에 녹아 있기에 쉬이 찾기 힘들다. 규칙이 보이지 않는 것은 규칙을 몰라서가 아니다. 야정은 자연의 대나무를 수없이 보았고, 서화가 지켜온 형식도 오래 익혔으며, 그 형식을 후학들에게 물려주기까지 한 인물이다. 그런데도 야정의 화면에 비치는 것은 눈으로 본 대나무도, 옛 교본을 따르던 그 대나무도 아니다. 그것은 대상을 오래 들여다본 끝에 남은 무엇, 나아갈수록 되돌아보게 하는 무엇인 것이다. 지필묵을 쓰고 화제를 적고 낙관을 찍고 족자로 거는 일, 여백을 남겨 숨을 틔우는 일. 서화가 오래 지켜온 이 형식들이 야정의 화면에서는 획 안에 스며들어, 겉으로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틀에 매이지 않은 광목 천이 벽에 걸리고, 그 천 위에는 아크릴이 오르고, 화면 가장자리까지 획이 지나가 빈자리가 사라진다.

획 안에 스민 것은 형상만이 아니라 형상을 만드는 규칙까지도 포함한다. 그 규칙은 두 가지 전제를 따르는데, 하나는 붓을 어떤 순서로 어느 방향으로 놀리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서화라는 형식이다. 그런데 규칙을 녹이는 일은 문인화가 애초에 요구한 것이었다. 닮음에 매달리면 아이의 식견이라 했으니, 규칙을 놓는 것은 그 요구를 끝까지 따른 결과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문인화가 서화의 형식까지 녹이라고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규칙이 획 안으로 스며들자, 그것을 받치던 형식도 따라 스며들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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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과 규칙을 녹였다는 것이 형식과 규칙 자체가 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획 안에 스민 채로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므로 붓을 들 때에도 규칙은 그대로 작동하게 된다. 규칙을 알기에 어디에서 멈추고 어디에서 다시 시작할지를 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놀이는 거기서 비롯된다. 규칙을 모르는 이는 어디에서 멈춰야 할지, 또 언제 이 놀이가 재개되는지 알지 못한다. 만약 규칙이 없거나 공유되지 않은 규칙이라면 그것은 놀이가 아니라 난장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서화에서 오래 공유되어온 규칙 가운데 하나가 그리는 자세와 보는 자세를 달리하는 것이다. 종이를 바닥에 곧게 펼치고 엎드려 붓을 놀린 다음, 다 그리면 일으켜 세워 벽에 걸고, 보는 이는 그 앞에 서서 같은 눈높이로 마주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세우지 않는 그림은 야정의 놀듯 그리는 태도이자, 관객을 초대하여 규칙을 공유하고자 하는 제안이다. 서서 볼 수 없으니 고개를 숙여야 하고, 고개를 숙이면 정면이 없으니 어느 쪽에서 다가가도 무방하다. 초대받은 관객은 이제 작가와 같은 시선을 공유하게 된다.

따라서 관객이 마주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작가가 놀듯 지나간 시간이다. 물론 세웠을 때도 같은 이미지를 볼 수 있겠지만, 세워졌을 때의 먹은 하나의 그림으로서 짙고 옅은 흔적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작가의 시선과 같아질 때, 짙은 부분은 먹이 고인 곳으로, 옅은 부분은 물이 흘러간 움직임에 따라 번진 곳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오랜 시간 중력의 이치를 체화한 신체의 경험으로 작품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물이 흐르던 방향과 눈이 보는 방향이 같아지는 것이다. 그렇게 붓으로 장난친다는 의미의 희필(戲筆)은 놀이의 규칙을 제안하고 공유함으로써 확장된다. 다만 이러한 장난이 장난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격식에 정통하면서도 그것과 다르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격(格)을 푼다는 것은 무너뜨리는 것도 뒤집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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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풀어낸 자리에는 무언가 새로운 것이 들어서기 마련이다. 먹을 물에 풀면 먹이 지워지는 것도 아니고 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듯이, 새로우면서 이전의 것을 지니고 있는 것이 그 자리에 들어선다. 야정의 화면에 들어선 것은 색을 품은 대나무다. 대나무는 오랜 기간 속을 비우고 곧게 서는 정신을 말해왔다. 그 대나무를 먹으로 치는 것이 묵죽(墨竹)이니 검은 것이 당연했고, 그 검정은 빛깔이 아니라 먹 그 자체였다. 또한 그 검정은 '검을 흑(黑)'이 아니라 '검을 현(玄)'으로 명명되어 왔다. 현은 모든 빛깔이 아직 갈라지기 전을 가리키는 글자이기에, 먹은 '검은색'이 아니라 '모든 색'이었다. 그러니 그 자리에 푸른색이 들어섰다고 해서 현이 자리를 빼앗긴다거나, 색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달라지는 것은 자리나 색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풀어내는가 하는 방식인 것이다.

그 방식들은 모두 다른 이야기를 하되, 하나의 주제를 품는다. 아크릴 물감과 먹이라는 재료에서부터, 아크릴 물감 마다마다의 다른 색들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이야기의 화자는 동일하다. 속을 비우고 곧게 서는 것, 대나무가 오래 말해온 바로 그 정신 말이다. 하나를 여럿으로 풀어내는 일이면서도, 여럿 모두가 하나를 가리킨다. 어쩌면 색을 취한다는 말에는 순서가 들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형(形)을 붙들고 있었다면 그 형에 맞춰 들일 수 있는 색은 몇 가지가 안 됐을 테니 말이다. 마디가 있고, 잎이 달린 대나무는 초록빛이거나 혹은 먹빛이거나 하듯이. 그러나 풀어놓고 나니 무엇이든 들어올 수 있게 되었으면서도, 무엇이 들어와도 현은 거기 그대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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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짚고 가야 할 것은 현과 함께 거기 그대로 있었던 처음의 그곳이다. 대상을 닮지 말라고 했던 자리 말이다. 그 자리에 화보라 불리는 교본이 들어앉았고, 야정은 그 교본을 풀어낸 셈이니, 문인화를 처음 자리로 돌려놓았다고도 읽을 수 있겠다. 정작 야정의 화면은 어떤 요소도 그렇게 읽을 수 있도록 안배하지 않는다. 돌려놓았다는 말은 돌아갈 자리가 그대로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천 년 전 소식이 말한 그곳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어서, 교본을 풀어내면 그리로 돌아가는 듯이 보일 것도 같다. 그러나 야정이 풀어낸 자리에 있는 것은 광목과 아크릴 등과 같은 오늘날의 무언가들이다. 이는 옛 서화가 서 있던 위치와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전통에 있어 야정이 계승인가 결별인가를 답하기 전에 선행되어야 할 질문이 있다. 무엇을 전통이라 부를 것인가. 만약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상투를 틀면 전통을 이은 것이라 볼 수 있는가. 그렇게 입고 이 시대를 사는 사람은 옛사람이 아니라, 이 시대에 낯선 이방인이 될 뿐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오늘날의 복식을 세련되게 입고 옛 선비가 지녔던 정신을 태도와 실천으로 내보인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겉은 이 시대의 것이고 안은 오래된 것이다. 천 년 전 소식이 고기 앞에서 본 것도 그것이었다. 값이라는 잣대가 아니라 고기가 고기일 수 있도록 하는 것, 또 그림이 그림일 수 있도록 하는 것. 이는 우리가 무엇을 취하여 보아야 하는지를 가리키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야정의 화면에서 그 자리에 있는 것이 현이다. 그렇기에 교본의 규칙이 전통인가, 그것을 걷어내라던 요구가 전통인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에 기준을 두는가에 따라 계승이 되기도 하고 결별이 되기도 한다. 취향(取向)이 무엇을 취하여 어디로 향하는가를 묻는 것이라면, 이 전시에서 취해진 것과 향해진 곳은 서로 다른 시간에 위치한다. 취한 것은 천 년 전의 요구이고, 향하여 만난 곳은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