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돌아오는 거야

평론아트인컬처2026. 9. 11.

덥다. 8월의 대구에서 이 말은 때 되면 하는 인사다. 아침에 나서면서 한 번, 점심을 먹고 나오면서 한 번, 저녁에 만나 자리에 앉으면서 또 한 번,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말을 주고받는다. 이 도시가 '대프리카'라는 위명으로 불린 지도 오래되었고, 다른 지역에서는 이곳 사람들이 그만큼 더위에 강한 줄 안다. 그런데 정작 대구 사람이 서울에 가더라도 덥기는 매한가지다. 혹여나 시원하다고 하는 '대구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인지 모를 자존심 때문이겠다. 견딘다는 것이 덜 느낀다는 뜻은 아닌 것이다.

그러니 견디는 일은 몸에 배는 것이 아니라 매번 새로 하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아스팔트가 물러지는 오후에 사람들은 그늘을 골라 걷고, 버스를 기다리며 손으로 부채질을 할지언정, 그렇다고 웃통을 까고 돌아다니지는 않는다. 땀이 비 오듯 나더라도, 주변 사람들의 눈 보호를 위해 벗고 다닐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여름,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대구의 아스팔트를 연상케 하는 전시가 두 개 있었다. 우손갤러리는 6월 초부터 8월 초까지 권오봉의 개인전을 열었고, 대구미술관은 7월 중순부터 10월까지 심윤의 《회색 극장》을 열고 있다.

우손갤러리의 벽에는 검은 것이 뭉쳐 있다. 아스팔트의 도포가 눌어붙은 듯한 굵은 선들이 서로를 가로지른다. 대구미술관의 벽에는 검게 그려진 사람이 있다. 제복을 갖춰 입고 앉은 인물에는 계급장과 훈장의 개수까지 세어지는데, 가까이서 보면 이미지의 경계가 아지랑이처럼 풀려 있다. 권오봉의 그림에서는 도구의 흔적이 보이는데, 심윤의 그림에서는 붓질조차 보이지 않는다. 두 작가의 작품들은 이렇게까지 다른데도 그 다름은 한 곳에서 기인한다. 몸이다.

그러나 몸이라는 개념이 그림의 근거로 서술된 것은 꽤나 오래된 일이다. 물감을 흘리거나 뿌리는 것으로 그리기를 대신한 작가들이 벌써 바다 건너에 있었고, 캔버스를 찢거나 진흙에 뒹구는 것으로 회화를 다시 질문하던 작가들도 있었다. 그 소식은 도록과 잡지에 실린 사진으로 배를 타고 건너왔다. 그리고 그 질문은 이곳에도 도착했다.

1970년대의 대구 미술계 또한 같은 질문을 공유했다. 벌거벗은 몸에 물감을 바르고 캔버스 천으로 닦아내는가 하면, 전시장을 나와 낙동강변에서 벌이는 실험적 사건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 실험들을 몸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묶을 수는 없겠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가 그때의 여러 갈래를 정리해 놓은 것처럼, 말과 기호 그리고 제도를 파고든 작업이 나란히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당시에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이는 것에 저항하던 작업들이었다.


반세기가 지났다. 권오봉의 개인전에서는 그만큼의 시대를 확인할 수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의 그림들 중 1993년의 그림은 두 폭으로 나뉘어, 왼쪽은 검정 바탕에 흰 X 하나가 굵게 그어져 있고 오른쪽은 회색 바탕에 숫자와 글자와 낙서가 흩어져 있다. '1 2 3 4 5 봉'이라는 장난스러운 셈법이 적혀 있고 '종일 눈'과 '감기'라는 낱말이 보인다. 갈색 크레용을 마구 뭉쳐 무언가를 덮으려 한, 혹은 심란한 내면을 표출하는 행위의 자국도 있다. 2001년의 그림에는 주황 바탕 위로 검은 선이 코일처럼 반복해 감기는가 하면, 1999년의 그림은 청록 바탕에 흰 선들이 긁혀 있다. 색을 올린 뒤 그것을 파내어 아래를 드러낸 자국들이다.

그런데 최근의 그림에는 그것들이 없다. 색이 없고, 글자가 없고, 형상이 없다. 일필휘지 같은 획을 보이는 작품도 있고, 붓을 처음 잡은 사람이 선 긋기를 연습하듯 같은 동작을 여러 번 수행한 작품도 있다. 획들은 끝에 이르러 필압을 드러내며 어디에서 힘을 주고 뺐는지 짐작하게만 할 뿐이다.

전시를 소개하는 글은 초기의 낙서 작업에서 오늘의 무위한 선에 이르기까지가 치열한 실험 끝에 얻어진 결실이라고 말한다. 동의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지만, 하나 덧붙이자면, '결실'은 도달한 지점을 가리키지, 이제껏 내려놓은 것들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삼십 년 사이에 권오봉은 낱말을 지웠고, 색을 지웠다. 이미지로 남은 것은 검정과 획뿐이지만 실제로는 캔버스 앞에서의 행위가 남은 셈이다. 무엇이 남았는지만 본다면 이 과정은 정련으로 읽힐 수 있으나, 무엇을 덜어내며 왔는가를 본다면 그 하나하나가 한때는 권오봉의 그림을 이루던 형식이었다. 이를 덜어내는 데에만 30년이 걸린 것이다. 그렇다면 권오봉은 캔버스 앞에서 반세기 전의 질문을, 그러니까 그림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여전히 실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심윤의 그림에는 이러한 작가의 행위가 보이지 않는다. 에어브러시로 물감을 뿌려 올리니 붓의 흔적도 손이 닿은 자국도 없다. 회색이 밝은 데서 어두운 데로 넘어가는 사이에 이음매가 없고, 어디서 멈췄는지도 알 수 없다. 그리는 동안 작가가 얼마나 움직였는지 작품은 말해 주지 않는다. 대형 작품이기에 고된 작업이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말이다.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회색 극장》에 출연하는 인물들도 하나같이 힘들어하고 있다. 〈디토〉와 〈하입보이〉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그렇게 보인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여기에는 아는 사람만 알아보는 것이 하나 있다. 한 시절을 풍미한 걸그룹 노래의 안무다. 캔버스에 남은 붓질은 없지만, 작가가 직접 춤을 추고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 그렸다. 비단 안무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다른 그림들의 등장인물 역시 심윤이 출퇴근길에서 본 사람의 모습을 기억해 두었다가 작업실에서 스스로 재현하여 그것을 촬영하여 그린 것이다. 때문에 그림에 그려진 몸의 동작들은 작가의 것이면서 작가의 것이 아니다.

게다가 빌려오는 것은 자세만이 아니다. 선큰가든에 설치된 〈천국의 문〉(2026)은 로댕의 〈지옥의 문〉에서 형태를 가져왔다. 문 위에는 천사로 보이는 존재가 검은 날개를 펴고 마이크를 든 채 노래하고, 문 앞 계단에는 흰 원피스 차림의 두 소녀가 마이크를 들고 같이 노래하며 이곳으로 빨리 오라고 유혹하는 듯하다. 그렇다고 이 문이 열릴 것 같지도 않다. 오늘 우리네 삶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무언가를 향해 가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오늘은 신나는 천국이나 내일은 일어날 수 없는 지옥일 수도 있겠다. 〈아! 내 간!〉(2022)에서는 신화의 형벌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그런데 그 형벌을 회사원 차림을 한 인물이 받아내고 있다. 프로메테우스가 받던 형벌은 사실 우리가 늘 받고 있는 형벌이라는 것처럼. 매일같이 쌓이는 피로는 현실에서 마주하는 업무 때문이 아니다. 간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매일같이 술로 간을 상하는 오늘의 이야기 너머에는 〈삼위일체〉(2026)가 된 우리의 모습이 있다. 절대 일어나지 않겠다는 뉘앙스를 온몸으로 던지는 인물이 소파에 늘어져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퇴근 후 그렇게 퍼져 있는 것이 가장 편한 것은 모두 간 때문이며, 어제 늦게까지 노래 부르며 술을 들이킨 이유 때문이기도 하겠다.


권오봉은 지우고 심윤은 들여온다. 권오봉은 삼십 년에 걸쳐 형식을 덜어냈고, 심윤은 미술사, 신화, 성서와 같은 서사를 동시대의 일면으로 불러들인다. 도구의 흔적만 남은 이미지와 도구의 흔적만 없는 이미지는 같은 것을 가리킨다. 오늘을 살아내는 몸이다.

'현대미술'이라는 개념이 바다에서 건너올 무렵에는 몸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회화를 다시 여는 질문이었다. 캔버스는 완성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고, 뭐가 되든 되겠지라는 실험적 태도였다. 그러나 여러 번 반복되는 것은 굳이 다시 꺼낼 이유가 없어진다. 여름에 피부가 새까맣게 타는 것을 넘어 살갗이 벗겨져 봐야 '아~, 선크림을 발라야겠구나' 하게 되듯, 반복되는 것이 질문이든 태도든, 그것이 오래 이어지면 관행이 된다.

그리고 다음 세대들은 그것을 전제 삼아 질문한다. 심윤이 카메라 앞에서 직접 자세를 취하며 몸을 쓰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특별한 일도 아니다. 다시 말해 두 작가 사이에 놓인 시간은 '몸'이라는 개념이 사라지는 과정이 아니다. 한쪽에서는 아직도 유효한 질문이자 태도이고, 다른 쪽에서는 그 질문과 태도를 방식으로 물려받았을 뿐이다.


반세기 전의 키워드를 이 여름 두 전시가 다시 공유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대구만의 키워드로 읽힐 수는 없겠다. 두 작가에게 영향을 준 많은 것들이 대구 안에만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두 작가의 작업으로 대구의 회화 전체를 말할 수도 없다. 대구의 작가는 많고,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하는 이들도 그만큼 많다. 그러나 두 작가가 그려온 궤적이 반세기째 여기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고유한가를 증명하는 일과 이어지는가를 확인하는 일은 다르다. 이 여름이 곧 지나더라도 우리는 내년에 또 덥다고 푸념을 하게 될 것이다. 견디는 일에 익숙해졌다고 여기면서도 매번 새로 견디듯, 대구 회화의 서사 또한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