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시선
서문《보통의 시선》강민영, 김영훈, 송수영, 신준민, 이채영, 정욱시안미술관2018. 7. 1.
오늘도 겨우 제시간에 맞춰 출근을 하고 고된 업무를 시작한다. 이내 몸과 마음은 지쳐 점심을 기다린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시간. 기쁜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나 회사 밖으로 향하지만 막상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지 못한다. 도처에 각 나라들의 메뉴들로 가득 찬 음식점들이 즐비해있지만, 마땅히 발길 가는 곳은 없다. 사실 생각해보니 그렇게 허기지지 않는다. 괜스레 회사 탓을 하며 분위기 좋은 카페에 들어가 간단한 브런치와 커피를 주문한다. 기다리는 동안 셀카를 찍고 ‘오늘도 고생하는 나에게 주는 휴식’과 같은 제목으로 SNS에 게재한다.
여러 매체에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이러한 모습으로 표현한다.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가 말하는 산책자Flâneur처럼, 현대인들은 도심을 목적 없이 산책한다. 현대 도시의 탄생과 함께 이와 같은 현상은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근대의 사람들은 하나의 목적을 향했고, 도시를 형성했다. 이후 현대로 접어들며, 사회 구성체는 집단에서 개인으로 바뀌었고, 집단Foule이 추구하던 목적은 사라져 떠돌게 되었다. 현대의 도시는 장소site가 사라지고 비장소non-site가 주류화 되었기 때문이다. 낡은 건물은 부서지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식당이었던 자리에 카페가 들어서고, 직장과 가까웠던 집은 직장을 옮기게 되며 이사를 가게 된다. 지속적 장소는 점차 사라져가고 한시적 장소들은 더욱 늘어가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일상을 떠돌게 된다. 그리고 SNS라는 개인적 공간을 통해 그 정처 없음을 해소하려 한다. 이러한 비장소적 활동은 평범한 일상적 경험들이 아닌, 특별한 경험을 요한다. 이와 같은 특별한 체험을 위해 우리는 미술관을 찾는다.
일상을 벗어나 특별한 경험을 기대하며 찾은 시안미술관의 전시 《보통의 시선》을 마주한 관객은 또 다시 일상이라는 주제와 조우하게 된다. 보통적인, 즉 일상에서 쉽게 보던 평범한 것들이나 무의미하게 지나쳤던 것들이 다른 모습으로 관객 앞에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관객은 보통적이지 않은 시선으로 일상을 배회하는 산책자가 되어 전시를 관람한다. 다소 추상적인 ‘보통’이라는 단어는 다수의 사람들의 기호나 취향을 포괄하는 개념으로써 중간, 혹은 일반적이라는 의미로 쓰이며, 이번 전시에서는 ‘일상’이라는 단어의 상위 카테고리로 작동한다. 그리고 ‘시선’은 보고자 하는 대상이나 사건에 대해 보는 이의 입장을 전제로 한다. 어떤 대상이 충격적으로 다가오거나, 삶에 영향을 주는 큰 사건일수록 바라보는 입장은 획일화되고, 평범하거나 소소한 사건들은 바라보는 시각이 다양해진다. 《보통의 시선》은 보통의 사건이나 보통의 사물들을 다각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고 어떤 태도를 취하고 실천하는가를 질문한다.
강민영 작가는 자연의 목가적인 풍경에서 적자생존의 치열함을 경청한다. 자연 속 각각의 개체들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이지만, 거시적으로 바라봤을 때는 그저 평화롭기만 하다. 그녀는 이러한 자연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우리의 삶과 오버랩 시킨다. 그리고 자신의 위치에 대해 질문하지만 그곳은 실재하지 않거나 끊임없이 변화되고 왜곡되어 있다. 작업에서 그녀는 이와 같은 불안요소들을 각각의 프레임, 혹은 레이어를 통해 실재와 왜곡의 간극에 대해 고민한다.
김영훈 작가의 ‘나는 가만히 서(恕) 있었다.’시리즈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기억과 경험을 이미지화한다. 작가는 삶 속에서 문득 마주하게 되는 불특정한 장소나 사물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환기하게 되는데, 이러한 그의 작업은 스스로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경험의 ‘반응’으로써 작동한다. 즉, 지극히 일상적인 이미지들인 텅 빈 공원이나 자판기, 떼어낸 스티커의 흔적 등은 실제의 경험이 아닌, 그의 유사기억과 경험에 반응하여 선택된다. 그리고 선택된 이미지들은 관객의 개인적인 기억과 경험으로 침투하여 개별적인 내러티브를 재생산한다.
송수영 작가는 사물의 기억을 좇아 사물의 현재와 원형을 함께 나타내기도 하고, 서로 다른 사물과 사물을 겹치는 방식으로 두 사물의 내용을 하나로 만들어 보여주기도 한다. 예컨대, 책을 구성하는 종이의 기억을 좇아 책을 조각하여 숲을 나타낸다든지, 비닐봉지를 조각해 잡초를 형상화 시켜 비닐봉지의 잡초스러움과 잡초의 비닐봉지스러움을 동시에 보여준다든지 하는 방식이다. 그녀의 시선은 무심한 발견과 그로부터 시작되는 확장적 인식을 통해 가려졌던 의미나 잊혀진 과거를 상기하게 한다.
신준민 작가는 평소 거닐던 장소의 풍경이나 사물들을 주기적으로 관망한다. 시간을 두고 관찰한 풍경의 변화들은 작가의 기억이나 경험을 통해 직접적 영감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기시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는 이렇게 반복적으로 경험된 기억이나 감정들을 하나의 캔버스 위에 레이어를 차근차근 쌓아가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여러 겹 중첩시킨 이미지들은 실제적 풍경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풍경이 되어 나타난다. 압축되어 나타나는 이미지는 반복을 통해 나타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채영 작가는 도시의 이면적 모습들에 주목한다. 어느 장소에서 무언가가 새롭게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들에서 무력감을 느끼고,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인공공원에서 쓸쓸함을 느낀다. 작가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도시는 사람들을 위해 구성된 것들이다. 그러나 그녀의 작업에서 ‘사람’이 제거되면서 친숙하지만 이질적이고 낯선 풍경으로 탈바꿈된다. 그것은 그녀가 도시를 바라보면서 느낀 이면을 가시화하며, 같은 공간속에서 다른 시공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정욱 작가는 일회적으로 소비되어 사라지는 사물들에 ‘영구보존’이라는 프레임을 덧씌운다. 어디서든 쉽게 쓰이고 버려지는 일회용 접시는 다분히 실용적 용도로 제작되었고, 이외의 용도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그러나 작가는 이 같은 일회용 접시를 가져와 캐스팅하여 세라믹으로 제작한다. 그리고 평소에 보지 않던, 혹은 볼 필요가 없던 일회용기의 뒷면을 보여준다. 그는 작업을 통해 오늘날의 한시적이고 소비적적인 모습에 대해 고민하고 새로운 맥락을 발견하고자 한다.
《보통의 시선》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이다. 때문에 그들의 시선 역시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들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그들은 작은 사건들이나 사물들에서 새로운 혹은 무심히 지나쳤던 모습들을 찾아낸다. 즉 그들의 작업은 현대사회의 단면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이를 바라보고 기록하는 작가로서의 예술적 태도와 목적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일상을 특별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작업을 따라가다 보면, 바쁜 일상에서 지나치고 말았던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